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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난 일본 큐슈 열차여행기 1

가본 곳
저는 원래 집돌이입니다. 연휴가 되면 어디로 놀러 갈까를 고민하기보단 집에서 컴퓨터나 하면서 뒹굴뒹굴 하는 게 더 좋은 집돌이입니다. 

그런 저도 제작년부터 작년까지 뭐에 홀린 듯, 연휴만 끼면 혼자서 일본여행을 다녀왔었는데 그 중에서도 작년 9월경, 3일 내내 열차로 큐슈 구석구석을 다녀왔던 게 제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기록삼아 한 번 남겨볼까 합니다. 

작년 추석연휴 때, 일본이나 다녀올 생각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살피다가 우연찮게 일본 특급관광열차들을 보게 됐습니다. 열차마다 디자인도 독특하고, 노선자체도 관광상품으로 특화 된 경로라서 자연풍경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여태까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여행방식이라는 게 제일 저를 설레게 했죠. 


여행박사 홈페이지에서 레일패스종류를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결국 JR 전큐슈 레일패스 3일권을 샀습니다. 대략 15만원 정도 하길래 처음엔 좀 망설이다가 샀던 건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면 어마어마 하게 싼 값이었으니까요. 일본에선 신칸센 일반석으로 몇 정거장만 왔다갔다 해도 2,3만원 깨지는 건 일도 아닌데 신칸센 지정석이나 특급관광열차를 3일동안 몇 번이고 탈 수 있는, 일본인들은 사고 싶어도 살 수도 없는 굉장한 패스였던 거죠. 아무튼 큐슈 여행 첫 이틀동안은 나가사키에서 지내다가 쿠마모토로 이동할 때 이 패스를 처음 써봤습니다.


 

 

이게 나가사키역에서 제가 탔던 885 츠바메 어쩌고 했던 열차인데, 지정석을 예약한 거라 탈 때부터 괜히 기분이 좋더군요. 일반석 차량으로 탑승하는 일본승객들을 보며 이상한 우월감 같은 게 막…


 

 

 

 

 열차여행의 즐거움엔 먹는 것도 빠질 수 없기 때문에 나가사키 카스테라, 푸딩, 당고(경단)을 미리 사왔습니다.


 

 

전날까진 나가사키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느라 온 몸이 피곤했었는데, 이렇게 편한 자리에 앉아서 느긋하게 풍경이나 감상하는 걸 왜 진작 생각 못 했을까 하며, 관심법을 겨우 발견한 궁예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달려서 겨우 쿠마모토역에 도착했습니다. 쿠마모토(熊本)의 이 "쿠마몬"이라는 곰캐릭터는 열도의 각 지방을 대표하는 캐릭터들 중에서도 늘 인기투표 1위를 하더군요.



 

 

 

  

 

 쿠마모토성을 보러 여기까지 왔던 건데, 마침 5개월 전부터 지진으로 일부가 박살난 것도 몰랐었네요. 보수공사 때문에 입장을 못 했지만 아쉬운대로 근처에 있는 시청 꼭대기에서 사진이나 몇 장 건졌습니다.


 

 

다시 역으로 돌아와서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특급관광열차 여행계획을 짜봤습니다. 그런데 이 관광열차라는 게 특정요일의 특정시간대만 운행하는 게 대부분이라 여러 관광열차를 하루에 최대한 많이 탈 수 있게 시간을 짜는 게 저한테는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고민고민 하다가 발매창구에 가서 직원아가씨한테 얘길 했는데…


 

 

단말기를 몇 번 타다다닥 두들기더니 1분도 채 안 걸리는 시간에 제가 이틀동안 탈 수 있는 열차예약을 다 끝내줬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본격적으로 사진에서나 보던 특급열차들로 관광을 떠나는 날이 되었습니다.


 

 

열차여행의 꽃은 뭔지 아시죠? 바로 도시락입니다. 일본에선 에키벤(駅弁)이라고 하죠. 하나 주의할 점은 "나는 예산을 아껴야 되기 때문에 도시락은 그냥 편의점에서…"이런 거 절대 안 됩니다. 일본은 거점이 되는 역마다 그 지역 특산물로 만든 도시락이 있는데, 편의점 도시락과 값도 몇천 원 차이 안 날 뿐더러, 반찬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정성과 맛이 비교가 안 되거든요. 아무튼 출발하기 전에 역사 안의 도시락 전문점에서 도시락을 하나 사갖고 플랫폼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열차가 바로 제가 탈 열차, SL히토요시(人吉)였고, 일본열차여행을 결심하게 만든 증기기관차, SL히토요시입니다. 그냥 껍데기뿐만이 아니라 진짜 땔감으로 달리는 증기기관차였어요. 다른 사람들도 신기해서 사진 찍느라 정신 없더군요.


 

 

 

 

 이 열차가 압권인 게 내부에 써 있는 설명에 의하면, 1922년~1975년까지 달리다가 기념관에 전시돼 있던 걸 몇 번의 의겸수렴을 거치고 다시 꺼내서 개조시킨 뒤 지금까지 운행중인 거라고 하더군요. 우리나라로 치면, 종로 우미관 앞에서 딸랑딸랑 하고 달리던 노면전차를 현대에 다시 살려내서 티머니 찍고 타는 격이죠.


 

 

 

  

 

 내부는 대충 이렇습니다.


 

 

  맨 뒷칸은 이렇게 간이라운지로 돼 있었습니다. 증기기관차 특유의 자욱한 연기 때문에 시야는 조금 가려졌어요.


 

 

슬슬 점심 때가 돼서 아침에 역에서 샀던 도시락을 꺼냈습니다. 열차여행의 하이라이트를 위해 과감히 1000엔을 쓴 것이지요. 결과는?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햄버거엔 콜라가 어울리듯, 도시락엔 녹차더군요. 제 취향이지만…


 

 

 

 

 히토요시역에 가까워질 때쯤 차내에서 소주아이스라는 것도 팔았습니다. 아래는 바닐라 아이스, 위는 소주를 슬러시처럼 살짝 얼린 거였는데 한 번쯤 먹어볼 만 했습니다.


 

 

 

 

 관광열차답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느긋하게 달리며 바라보는 초록빛 시골풍경은 그냥 멍하니 보기만 해도 좋았습니다. 이런저런 고민과 잡생각들도 그냥 풍경과 함께 천천히 쓸려가는 느낌...


 

 

 

 

 중간중간에 내려서 잠시 쉬다 가는 역들도 대부분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종점인 히토요시역입니다. 내리자마자 매미소리는 시끄러웠지만 거리는 너무나도 한산하고 조용했던 기억이 나네요.



  

 

 

 일단 이동경로는 이렇습니다. 앞으로 4개의 또 다른 특급열차 여행담이 있지만 일단 여기서 쉬어가겠습니다.